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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7/11]만남과 헤어짐 > 목사님칼럼

[2003/7/11]만남과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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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5-12-23 12:31 조회 5,40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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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간사라지만
누굴 만나서 어떻게 헤어지느냐는 흥망의 관건입니다.

붉은 점되어서 만나면 붉은 선을 이루고
그 붉은 선이 모이면 또 붉은 면이 되듯이
좋은 사람과 좋은 만남은 좋은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과 만남은 후회를 만듭니다.

주변을 보노라면, 한 때는 사랑으로 만난 이들이
원수 되어 헤어지는 것도 보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여러 변화를 이룩하는 것이지만
그 중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쉽게만 생각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며칠 전, 한 장의 메모를 받았습니다.
군대동기라고 적혀 있는데
그 이름이 기억에 없었습니다.
곧 전화를 하니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누구의 안부며 전화번호가 줄줄이 왔습니다.

벌써 오래 전에 헤어진 우리들이지만 서로를 찾은 것입니다.
제법 그 움직임은 활발하여, 적은 동기들일지라도 절반은 찾았고
우리들만의 카페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그 동안 정기총회니 뭐니 하면서
울진으로 김포로 오락가락했던 것입니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큰 아이가 직장을 다니는 친구가 있고
탤런트로 주가를 올리는 친구도 있고
횟집을 경영하는 친구도 있고
도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도 있고, 병원에 입원한 친구와
지척의 거리에 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들과 이래저래 전화 수다를 부리던 중
나이는 먹고, 사는 것은 달라도 신났습니다.
옛날의 문식이
옛날의 기봉이
옛날의 기호였으며
나 역시 옛날의 용범이었습니다.

문득 만남의 진지함이 찾아왔습니다.
헤어짐의 신중함도 찾아왔습니다.
삶의 성실함도 찾아왔습니다.
만남은 무슨 만남이든 헤어짐을 전제로 하고
곧 그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에 이들을 잠깐의 만남으로만 생각하였다면
그래서 안보리라 못 보리라하여, 마구 대했다면
이들은 그 때의 내 모습을 기억할 것이고
이럴 때 찾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한가지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찾는 이의 수고는 컸겠지만
최근 이사한 교회 전화번호로 찾아온 것을 보니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어디에 숨든지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었습니다.
한 10년 전, 이 때는 중학 동창이  집으로 전화를 해왔습니다.

역시 뜬금 없는 전화였고 자기의 직책을 통해서 찾아 낸 것입니다.

그 때의 기분이란 반가움보다 전율을 느꼈습니다.

어제 오늘 전화가 계속 옵니다.
안부를 묻고 자녀들을 묻고 하는 일을 묻습니다.
어느 친구는, 목사라는 말에 갑자기 말을 높이기도하고
어느 친구는, 재미없어서 못 만나겠다고 엄살을 떱니다.
어느 친구는, 그 때부터 그런 조짐이 있었노라고 존경도 표합니다.

끓는 피 있을 때 모인 친구들, 카페의 사진을 보아서는
기억이 없습니다.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만남은, 첫 만남을 가졌던 그 나이보다
훨씬 지난 지금에 만남입니다.

이제 또 언제 어떻게 헤어질지 모릅니다.
만남과 헤어짐, 흔하디 흔한 일이라지만
결국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드는 내 삶입니다.

나 그 곳을 선택했기에 그들과 함께 점되고 선되어
제대 후라도 한 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10월에 만나면 그 때 그 군가를 목청 것 부르겠습니다.

만남은 설레이고 헤어짐은 슬픈 관계야말로
성공한 삶일 것입니다.

생애 중 소중한 만남은 주님과의 만남이고 슬픈 헤어짐은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헤어짐입니다.

언제 헤어짐 없는 만남만 있을까요?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내게 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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