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21]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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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가 울려 퍼져야 할 이때에
포성을 듣는다는 것은 우울한 일입니다.
오늘도 꽃 소식보다 더 많은 전쟁의 소식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전쟁도 실시간의 동영상으로 중계를 하므로
자연, 전쟁의 목격자가 되어버렸습니다.
무슨 싸움을 그렇게도 크게 싸우는지
온갖 병법과 무기가 홈쇼핑의 상품마냥 소개되곤 합니다.
나만 괜찮다면
남자들이 신나해 하는 것이 전쟁이라지만,
신예 무기에 고통당할 저 세계와 저 인생들을 생각하면,
신남은커녕 전율을 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은
병기의 위력과 승전에 있을 뿐
죽음과 부상과 이별의 고통에는 없는 듯 합니다.
하긴 전쟁에서의 남의 죽음이 내 승리이고 보면,
전장에서의 남 생각은 사치이려나 봅니다.
그동안,
전운이 감도는 여러 날들을 회상해 보면
전쟁은 국가간의 다툼이라지만,
동물의 먹이다툼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명분이 어떻던
실리가 무엇이든
남의 떡 빼앗아
내 입에 넣겠다는 탐욕의 몸짓이었습니다.
전쟁을 주도하는 국가도
찬성하며 지지하는 국가도
평화를 운운하며 반대하는 국가도
탐욕스럽기는 매 한가지였습니다.
벼락 맞은 소 뜯어 먹는 격으로
고도의 산수로써
떡 고물이나 고기 국물이라도 떨어지면
명분을 만들어 주도하고 찬성하며
없으면 그 역시 명분을 만들어 발 뺏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반대했던 국가들이 전쟁 발발 후
지지로 돌아선 것은
주도국이 예뻐서나
명분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이후의 국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전쟁이든
산자가 있으면 죽은 자가 있습니다.
그 전쟁의 덕을 보는 자도 있습니다.
전쟁이든 싸움판이든
살아 있는 자와 덕 보는 자는 정해져 있습니다.
소위 강대국이요 있는 자입니다.
약자는 이래저래 서러울 뿐입니다.
어느 존경하는 자가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했나요?
평등은 죽은 자의 무덤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무덤에서 조차
양지와 음지가 차이 나고
크기가 차이나니
세상은 부조화가 합당하려나 봅니다.
굳이 전쟁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어리석음은 보이지 않겠습니다.
좋은 싸움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꼭 반전운동만이 유력하다고 지지하지도 않겠습니다.
바다의 평온은 바다를 썩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또한 믿는 성도답게
역사의 주관과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일임을 믿기에
기도하라고 주창하렵니다.
언뜻 보기에는
화려한 불꽃놀이 같지만,
거기에는 울부짖는 소리와
곡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무슨 전쟁이든 정치가나 군인이 주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우리 지체 속에 있는 죄입니다.
죄가 원흉입니다.
전쟁의 피해는 모두에게 미칩니다.
피해자는 피해를 입었기에
가담자는 가담을 했기에
공격자는 공격을 했기에
목격자는 목격을 했기에
방관자는 방관을 했기에
반대자는 반대 했기에
자~! 이제는 어떨 것이며
어떻게 할까 하는 대책도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4월에
죽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벚꽃이 필 때 쯤
전쟁의 포성이 멈춘다면 좋겠습니다.
올 4월의 소리는 기도여야 합니다.
사 2: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펴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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